[SP데일리=신민규 기자] 하림그룹의 계열사들이 총수 아들의 회사를 부당지원 해 공정위로부터 54억18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것은 적법하다는 판결이 나와 주목된다. 이로써 하림그룹의 일감 몰아주기, 부당지원 행위가 법적으로 확인됐다.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가 '편법승계'에 활용된 줄거리는 이렇다.
앞서 2012년 하림그룹의 김홍국 회장은 비상장 계열사인 올품의 지분 100%를 아들 준영 씨에 증여했다. 올품은 동물용 약품 제조 판매회사다. 증여해줄 당시 올품의 자산 규모는 3200억원 수준이었다. 매출액은 862억원, 영업이익은 91억원이었다.
문제는 증여를 통해 준영 씨의 개인회사가 된 올품은 이후 빠르게 성장했다는 점이다. 1년 뒤 2013년 매출은 3464억원으로 1년만에 4배 가까이 늘었고 영업이익은 168억원으로 2배 늘었다.

올품은 매년 30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하는 회사로 자리매김했고, 자산 규모 1조원에 달하는 회사가 됐다.
이처럼 올품이 급격하게 성장할수 있었던 뒤에는 '하림그룹의 불공하고 부당한 거래'가 있었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하림그룹 계열사들이 올품의 제품을 비싼 값에 사주는 방식으로 올품이 부당 이득을 챙길 수 있도록 도왔다"며 "배합사료를 제조하는 계열사는 제조사로부터 직접 구매하던 사료 첨가제를 올품에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바꿨고, 이런 과정에서 올품은 거래금액의 3%가량을 중간 마진으로 챙겼는데 '전형적인 통행세'를 받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공정위는 2017년부터 하림그룹에 대한 조사에 착수, 2022년 1월 올품과 하림그룹 8개 계열사에 대해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 54억1800만원을 부과했다.
물론 하림그룹은 올품에 대한 부당지원은 없었다는 입장을 밝혔고, 공정위가 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번 법원 판결에서 패소했다.
파이낸셜투데이는 이런 부분에 대해 "하림그룹이 계열사를 동원해 총수 아들이 보유한 기업을 도와준 것, 사익편취의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하림그룹의 지배구조 안에서 올품의 지위를 보면 단순히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사익편취에 그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올품 통해 아들에게 하림지주 최대 지배력 키워줘"
하림그룹은 지주사인 하림지주가 하림, 팬오션, NS쇼핑 등 계열사들의 지분을 50% 이상 보유하고 있는 지주사 체제로 구성돼 있다. 하림지주의 최대주주는 21.1%의 지분을 보유한 김홍국 회장이다.
특히 올품은 하림지주의 지분 5.78%를 직접 보유하고 있고 또 100% 자회사인 한국바이오텍을 통해서도 하림지주의 지분 16.69%를 보유하고 있다. 이 두 지분을 합하면 22.47%로 김홍국 회장이 보유한 지분율(21.1%)보다 오히려 1.37% 포인트 더 많다.
올품은 100% 김 회장의 아들 준영 씨의 개인회사이고, 한국바이오텍은 올품이 100% 지분을 가진 종속회사다. 결과적으로 올품을 통한 준영 씨의 하림지주에 대한 지배력이 김 회장을 넘은 셈이다.
그렇다면 하림지주의 지배력을 이만큼 얻게 된 준영씨가 납부한 세금은 얼마일까.
준영씨는 단지 올품의 지분 100%를 증여받을 때 낸 증여세 100억원을 냈을 뿐이다. 그런데 이 세금마저도 준영 씨 주머니에서 나갔다기 보다는 올품의 유상감자를 통해 100억원의 증여세 자금을 마련했다는 점도 간과할수 없는 대목이다.
유상감자는 주식 수를 줄이는 대신 그에 해당하는 금액을 주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어차피 준영 씨의 올품 지분율은 100%이니까 감자 이후에도 100%의 지분을 유지했다. 그래서 사실상 회삿돈을 빼서 증여세를 냈다는 지적이 맞는 셈이다.
물론 최근 법원 판결로 올품과 하림 계열사들은 과징금 54억1800만원을 부담하게 됐다. 그러나 자산 규모 17조원으로 재계 순위 27위에 달하는 '하림지주'라는 기업집단을 승계한 대가치고는 결코 크지 않은 돈이다.
한편, 하림그룹이 승계를 마무리하기 위해서는 김홍국 회장이 보유한 하림지주 지분 21.1%를 준영 씨를 비롯한 자녀들에게 상속·증여하는 과정이 남았다. 그 과정에서 물론 추가로 세금이 부과되어야 한다.
사실 자녀 소유의 비상장 회사를 만들고, 계열사를 동원해 이들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등의 편법을 통해 사익을 챙기게 하고, 이를 통해 상속세를 피하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자주 사용되는 지름길(?)' 로 알려져 있다.
이런 문제가 '비난 받으면서' 덩치가 큰 재벌그룹은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일부 중견 그룹에서는 아직도 부의 편법승계를 위해 빈번하게 악용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에 대해 업계에서는 "'공짜로 얻어먹는 부잣집 자녀들의 상속·증여세'의 공평한 과세를 위해서라도 세무차원에서의 철저한 조사가 병행돼야 한다"는 시각이 대부분이다.